가수 현미님이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오전 9시 37분경 본인의 자택에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이 발견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바로 사망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별세에 이어서, 한국 가요계의 전설까지 사망에 이르러 많은 팬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1. 현미 프로필
가수 현미님은 38년 출생으로, 57년에 데뷔하였습니다. 그녀는 북한 출신으로, 남북전쟁 중 1.4 후퇴 때 6남매와 부모님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때 당시 여동생 2명은 평양에 남게되어, 이산가족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그래서 2020년에 진행된 이산가족 동봉 VR 컨텐츠 등에 참여하거나, 중국에서 재회하는 등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움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2. 현미 데뷔 및 명곡
한미연합 8군 (카투사) 위문 공연 당시 그녀는 기존에 칼춤 무용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정되어 있던 미 여가수의 무대가 취소되었고, 급한대로 대타 공연을 서게 되면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당시 드물었던 "여대생 가수"라는 타이틀을 활용해, "현 시스터즈"에서 "센터"를 담당하여 활동을 했고, 추후 연인이되는 "이봉조" 작곡가에게 눈에 띄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62년 그녀의 가장 큰 명곡인 "밤안개"를 발표하여 단번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몽땅 내사랑", "두사람", "애인", "무작정 좋았어요"등 다양한 히트곡들을 차례대로 발매하며 60년대를 주름잡는 스타가 됩니다.
3. 현미 결혼
가수 현미님은 작곡가 이봉조의 연인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이봉조는 부인이 있었는데, 몰래 현미와 연애 및 동거를 시작했고, 아이까지 임신하여 결혼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본 부인이 직접 현미네 집을 찾아왔고, 자신이 이봉조의 부인이며, 아이가 셋이라는 사실을 알려 그때 처음으로 이봉조의 바람 상대가 본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이봉조가 현미에게 본인은 본처와 이혼 서류를 작성했다며 이를 보여주고 안심시켰지만,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두집 살림을 해서 결국 본인의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봉조는 분노하여 칼을 들고 같이 죽자며 쫓아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별 다른 피해는 없었으며, 현미님은 결국 혼인신고도 안한 채로 아이를 낳아 미혼모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4. 현미 사망
현미님이 23년 4월 4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2007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50주년 콘서트를 개최한 명실상부 명가수였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며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밝히는 등, 노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밝힌바가 있습니다. 너무 건강했던 분이시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팬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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