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은행의 파산은 요약하자면 1) 고물가로 인한 성장 둔화 2) 스타트업의 예금 인출 3) 채권 가격의 하락 세 가지가 맞물려서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최대한 쉬우면서 자세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1. SVB 은행
SVB은행은 Silicon Valley Bank의 약어로, 스타트업 회사들을 주요 고객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은행입니다. 사실 이번 사태로 인해서 처음 알았던 기업인데, 나름 실리콘 밸리 내에서는 유명한 기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자산 규모만 따져봤을 때 미국 내에서 16위 (약 2096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로 치면 약 7위 정도에 해당하는 은행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은행은 1983년에 사업을 시작하여 올해로 약 40년이 되었습니다. 유서가 꽤 깊으며, 08년 리만-브라더스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던 나름 베테랑 은행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자금 규모나 역사로 봤을 때 미국 경제에 있어서 나름 큰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SVB은행이 어쩌다가 파산 위기까지 처하게 된 것일까요?
2. 파산 이유
0) SVB은행의 사업 구조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존 은행의 이익 구조와, 실리콘 밸리 은행 간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은행은 "예대마진"을 통해서 이익을 창출합니다.
예대마진, 뉴스에서 많이 들어보셨죠? 풀어서 쓰면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이는 약간 고상한 표현이고, 속된 말로 하자면 "대부업"입니다. 즉, 남의 돈을 싸게 빌리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빌려줘서 그 차익을 챙기는 것이죠.
SVB은행도 기본적인 컨셉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은행은 "스타트업"들을 주 고객으로 삼습니다. 또한, 돈을 빌려줄 때, 시중 금리보다 싸게 빌려줍니다. 그 대신, 추후 스타트업들이 상장에 성공했을 때, 회사의 주식을 조금 싸게 받을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BW 사채라고 합니다.
쉬운 예시로 "채널"이라는 스타트업 회사가 이 은행으로부터 100만원 어치 받았다고 합시다. 시중의 금리는 3%라고 가정하면, 이 은행은 2%에 대출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1년 후 "채널"이라는 회사가 코스피에 상장을 했다고 합시다. 이때 처음 주가가 한 주에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은행은 BW를 행사하여 약 1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럼 기존에는 2만원의 이익이 생길 것이었는데, 1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자본으로 취득하여 시세 차익만 약 900만원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제 회사가 상장에는 실패한다면, 단순히 원리금을 받아가면 되는 것. 안정적인 수익을 조금 포기하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스타트업의 성장 둔화
겉으로만 봤을 땐 굉장히 좋은 사업 구조이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작년 다들 주식 어떠셨나요? 올해 가스비, 난방비는 어떠셨나요? 소비 활동은 어떠셨나요? 2022년 한해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정도로, 모두가 가난해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전쟁과 유래 없는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필수적인 것 외에는 돈을 잘 안쓰게 되고, 이는 곧 기업의 성장 둔화로 이어져, 스타트업 같은 회사들은 더더욱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성장을 빼면 시체와 같습니다. 벤쳐 캐피털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고, 회사의 이익도 줄어들어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파산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스타트업 회사들의 주식 상장은 물론이고, 은행에 돈을 갚을 능력까지 사라지게 되는 위험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SVB는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2) 결국 적금을 깨는 스타트업
앞서 잠깐 서술했지만 스타트업은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왔을 때, 성장세가 악화되고 이로 인해 외부로부터 투자 자금을 유치받기 힘들어집니다. 결국 스타트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맞습니다. 비축해 둔 현금을 최대한 찾아서 본인들의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현금을 비축했던 걸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불과 2~3년전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경기를 부양하고자 각국 정부에서 돈을 말 그대로 뿌렸고 (재난지원금) 시중에 돈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소비를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보복 소비" 라는 단어까지 나오며 돈을 펑펑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당시만 해도, 스타트업들은 폭풍 성장세를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고, 많은 밴처 캐피탈들이 회사에 투자를 했고, 회사에는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넘쳐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당시 스타트업 회사들은 은행에 돈을 빌리기보단 오히려 남는 현금들을 SVB에 저축해 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때 비축했던 현금을 하나 둘 씩 되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개인으로 비유하자면, 당장 생활비가 급하게 필요해서 적금이나 청약을 깨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3) 금리 상승의 연쇄 작용 (채권 가격 하락)
마지막 클라이 막스입니다. 앞서 서술했듯 스타트업 회사들이 SVB은행에 돈을 맡겼다고 했는데, 은행은 이 돈을 어떻게 했을까요? 첫 번째로는 일부 스타트업 회사에게 돈을 빌려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V.C (벤처 캐피털)들이 앞장서서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전처럼 많은 회사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SVB가 선택한 두번째 옵션은,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채권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루고,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요약하겠습니다.
채권은 아주 간단하게 단기 금리를 추종하는 단기채(2년)와, 장기 금리를 추종하는 장기채(10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기채는 보통 시장 금리가 반영되기에 지난 2~3년 전에는 0% 금리 대였고, 은행은 결국 이자가 조금이라도 높은 10년물 장기채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 했듯, 2022년부터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하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연방준비제도 (연준, FED)에서는 금리를 엄청난 속도로 올리기 시작합니다. 시장의 금리가 올라가자, 전체적으로 새로 발행하는 채권들의 금리도 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전의 낮은 금리의 채권들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금리가 낮을 때 채권을 사들였던 SVB는 잠정 손실을 크게 입게 되죠. 물론 이는 팔지만 않으면 손실이 확정되지 않으므로, 평상시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돈을 맡겼던 스타트업 회사들이 예금을 회수하려고 하고 있고, 현금 보유고가 부족한 은행은 보유한 채권을 팔아야만 돈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예금을 돌려주게 되고, 소식을 들은 예금자들은 너도 나도 빨리 돈을 되찾으려 하고 (뱅크런), 다시 채권을 팔아서 손실을 보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입니다.
3. 앞으로의 미래
SVB은행은 앞서 얘기했듯 미국 내에서 나름 작지 않은 규모의 은행이었습니다. 물론 이 은행 하나가 망했다고 미국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권에 대한 신뢰도입니다.
이번 사태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아무리 높은 금리를 주더라도 예금 자체를 꺼릴 것이고, 이로 인해 은행은 기업에 대출해줄 돈이 없게 되겠죠.
이에 대한 연쇄 작용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금융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기업들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게 확산된다면 2008년 금융위기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죠.
저도 과대한 해석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08년의 금융위기도, 작은 은행의 붕괴 (MBS 붕괴)를 시작으로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까지 이어졌습니다. 작은 불도 조심해야 하는 법입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실리콘 밸리 은행 외에도, 다른 지방 은행이 파산할 가능성도 무게를 두고 특별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경제 위기의 신호탄일지, 단순한 기우일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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